메모

제텔카스텐은 상향으로 구성된다. 키워드가 먼저 있고 메모를 채우는게 아니라, 메모를 채우다보니 어떤 주제가 이미 상당히 발전해서 개요가 필요한 상태이거나 혹은 개요가 있으면 작은 도움이라도 얻을 수 있는 상태가 되었기 때문에 인덱스에 추가하는 것이다. 영구 보관 메모들간의 연결에 가장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

메모를 연결하는 일이 제텔카스텐의 핵심이다. 키워드는 연결된 메모들에서부터 탄생한다. 제텔카스텐의 꽃이 ‘키워드’라면, ‘메모 연결’은 밭을 갈고 씨뿌리는 일이다.

우리는 링크를 만드는 일이 메모 상자를 유지 관리하는 차원의 허드렛일이 아님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 의미 있는 연결관계를 찾는 작업은 최종 원고를 완성하기 위해 생각하는 과정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단계는 상징적으로 우리의 내부의 기억을 찾는 대신, 문자 그대로 메모 상자를 살펴보고 연결성을 찾는 매우 구체적인 작업이다. 또한, 실제 메모를 다루기 때문에 무언가가 타당한지 아닌지를 문서로확인할 수 있어서 연결 관계가 없는 곳에서 연결 관계를 상상할 가능성도 적다.

발췌

- 숀케 아렌스, 제텔카스텐, 인간희극, 2021

제텔카스텐의 디지털 버전들에서 메모들을 연결하는 것은 식은죽 먹기보다 더 간단하다. 그런데 아무리 어떤 프로그램이 공동 서지정보 등을 바탕으로 이렇게 저렇게 연결하려고 제안한다 해도, 제대로 교차 참조cross-references하는 작업은 만만치 않은 생각을 요하는 일이자 생각의 발전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루만은 4가지 기본 유형의 교차 참조법을 활용했다[^20-p.173f;82-p.165f] 디지털 버전들에서는 이 가운데 첫 번째와 마지막 유형만 관련 있고, 나머지 두 가지는 종이와 펜을 사용하는 아날로그 버전의 제약을 상쇄하는 용도로만 필요하다. 따라서 디지털 프로그램을 사용한다면 이 두 가지는 신경 쓸 필요가 없다.

  1. 첫 번째 유형의 링크는 어떤 주제에 대한 개요를 제공하는 메모들과 연결된다. 이런 메모들은 색인에서 직접 연결된다. 어떤 주제가 이미 상당히 발전해서 개요가 필요한 상태이거나 혹은 개요가 있으면 작은 도움이라도 얻을 수 있는 상태라면, 특정 주제로 진입하는 엔트리 포인트로 대개 이런 메모가 사용된다. 이런 메모에는 특정 주제나 문제와 관련된 다른 메모들과의 링크를 모아둘 수 있는데, 이때 가급적이면 링크된 메모에 무슨 내용이 있는지 짧게 적어두면 좋다(한두 마디나 짧은 문장이면 족하다). 또한 이런 종류의 메모는 생각의 구조를 짜는 데 도움을 주기에, 원고를 발전시키기 전의 중간 단계로 간주하면 된다. 무엇보다도 이런 메모는 메모 상자 안에서 방향을 잃지 않게 도와준다. 여러분도 이런 메모를 써야 할 때가 되면 다 실감하게 될 것이다. 루만은 이런 종류의 엔트리 포인트 메모에 다른 메모와의 링크를 최대 25개까지 기록하기도 했다. 물론 링크는 시간이 지나면서 추가될 수 있으므로, 한꺼번에 이렇게 많이 기록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이렇게 링크가 추가되는 것만 봐도 그 주제가 얼마나 유기적으로 늘어날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어떤 주제와 관련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판단은 우리가 현재 이해하고 있는 바에 따라 달라지며, 매우 진지한 판단이 이루어져야 한다. 아이디어는 그 바탕이 되는 사실이 얼마나 많은가에 따라 그만큼 명확히 규정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떤 주제와 관련 있다고 보는 관점과 이것을 구조화하는 방법은 시간이 흐르면서 달라진다. 이런 변화는 더욱 적합한 또 다른 주제 구조를 지닌 새로운 메모로 이어질 수 있으며, 그 메모는 이전의 메모에 대한 코멘트로 간주될 수 있다. 감사하게도 이런 순간에도 나머지 모든 메모가 쓸모없게 되지는 않는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색인의 엔트리 항목을 이 새 메모로 바꾸거나 추가적으로 옛 메모에 ‘이제는 새 구조가 더 적합한 것으로 보인다’는 언급만 하면 된다.
  2. 위와 유사하지만 덜 중요한 링크들은 메모 상자의 지엽적, 물리적 무리cluster에 대한 개요를 제공하는 메모들과 관련된다. 이것은 루만처럼 종이와 펜으로 아날로그식 작업을 하는 경우에만 필요하다. 첫 번째 유형의 메모는 메모 상자 속 메모의 위치와 무관하게 어떤 주제에 대한 개요를 제공하는 반면, 이 두 번째 유형의 메모는 물리적으로 가까운 곳에 있는 메모에서 논의되는 모든 주제를 파악하는 실용적인 방법이 된다. 메모들 사이에 메모를 집어넣어 내부적으로 부주제와 부부주제가 가지를 뻗도록 만들면 원래의 사고방식이 다양한 메모들 때문에 방해받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 두 번째 유형의 메모가 원래의 사고방식을 놓치지 않고 파악하게 해주는 것이다. 물론, 디지털 버전 프로그램으로 작업하는 경우에는 이 문제를 염려할 필요가 없다.
  3. 세 번째 링크들도 마찬가지로 디지털 버전에서는 관련성이 적다. 이 링크들은 현재 메모의 선행 메모를 가리키기도 하고 현재 메모의 후속 메모를 가리키기도 한다. 이 링크들은 물리적으로 가까이 붙어있지 않은 메모들이라도 어떤 메모들끼리 서로 이어지는지 알게 되는 데 의의가 있다.
  4. 가장 일반적인 형태의 참조방식은 단순한 메모 대 메모 링크다. 이 경우에는 두 개의 개별 메모 사이의 적절한 연결 관계를 보여주는 것 이외의 기능은 없다. 관련된 두 메모가 메모 상자 안 어디에 있건, 혹은 다른 맥락 속 어디에 있건 상관없이 이 두 메모를 연결함으로써 놀랍고도 새로운 사고방식이 구축될 수 있다. 이 같은 메모 대 메모 링크는 우리가 안면 있는 사람들과 맺고 있는 사회적 관계상의 “약한 유대관계”[^112] 와 비슷하다. 대개 우리가 가장 먼저 찾는 대상은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에게 새롭고 다양한 관점을 제공해주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러한 링크 덕분에 우리는 외견상 관계없이 보이는 주제들 사이에서도 놀라운 연결성과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다. 패턴이 당장 눈에 띄지는 않겠지만, 두 주제 사이의 메모 대 메모 링크가 다수 구축되고 나면 그 모습을 서서히 드러내기 시작할 것이다. 루만의 사회 시스템 이론의 주요 특징 중 하나가 매우 다양한 사회분야에서 찾을 수 있는 구조적 패턴의 발견이라는 사실은 그저 우연이 아니다. 예를 들어 루만은 돈, 권력, 사랑, 진리, 정의 같은 다양한 가치들이 어떻게 구조적으로 유사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사회적 발명품으로 여겨질 수 있는지를 입증할 수 있었다(이것들은 모두 커뮤니케이션 제의를 수용할 가능성을 높이는 매체로 여겨질 수 있다. 니클라스 루만의 『사회의 사회』 9~12장 참고).[^18] 반면, 미리 생각해 둔 테마와 주제에 따라 모든 것이 깔끔하게 분리된 시스템으로 작업하는 사람은 이 같은 의견을 결코 제시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다.

한편, 우리는 링크를 만드는 일이 메모 상자를 유지 관리하는 차원의 허드렛일이 아님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 의미 있는 연결관계를 찾는 작업은 최종 원고를 완성하기 위해 생각하는 과정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단계는 상징적으로 우리의 내부의 기억을 찾는 대신, 문자 그대로 메모 상자를 살펴보고 연결성을 찾는 매우 구체적인 작업이다. 또한, 실제 메모를 다루기 때문에 무언가가 타당한지 아닌지를 문서로확인할 수 있어서 연결 관계가 없는 곳에서 연결 관계를 상상할 가능성도 적다.

이런 연결을 만들어 내는 주체는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이기 때문에, 우리는 메모 상자의 내부 구조를 생각으로 구축할 수 있다. 제한된 기억과는 독립적으로 외부에도 이런 구조를 구축하는 만큼, 우리는 더욱 구조적인 방식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될 것이며, 여러 사실들과 심사숙고한 아이디어, 검증 가능한 참고자료로 이루어진 네트워크 안에 우리 아이디어의 뿌리를 내리게 될 것이다. 또한 메모 상자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는 현실적인 커뮤니케이션 파트너와 같아서 우리가 현실감을 잃지 않게 해준다. 혹시라도 우리가 다소 뜬구름 잡는 아이디어를 추가하려 들면, 메모 상자는 우리가 다음과 같은 사항을 먼저 점검하게끔 만든다. 참고자료가 무엇인가? 기존에 가지고 있는 아이디어나 사실과는 어떻게 연결되는가?